🏆 맛보기 — 빈출 랭킹 1위 주제 전문 공개
왜 랭킹순인가 — 근거 수치 (33회차 전수 분석)
| 순위 | 주제 | 33회차 중 등장 회차 수 | 등장률 | 등급 |
|---|---|---|---|---|
| 1위 | 거란의 침입 | 20개 회차 | 61% | ★★★★★ |
| 2위 | 임진왜란 | 19개 회차 | 58% | ★★★★★ |
| 3위 | 3·1운동 | 15개 회차 | 45% | ★★★★★ |
33회차(2020.5~2026.8, 47~79회) 전수 분석 결론: 이 세 주제는 "가끔 나오는 빈출 주제"가 아니라 "거의 매 회차 나온다고 가정하고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" 압도적 1~3위다. 특히 1·2위(거란의 침입·임진왜란)는 33회차의 절반 이상에서 반복 등장해, 이 두 주제만 제대로 잡아도 시험 회차의 과반을 커버한다.
1위 ★★★★★ 거란의 침입 — 33회차 중 20개 회차 등장(61%)
왜 이렇게 중요한가
한능검 심화 전체 주제를 통틀어 가장 높은 등장률이다. 2026-09-16 33회차 전수 재검 기준 20개 회차(61%)에서 등장했고, 9회차 표본 조사 단계에서도 이미 7/9회로 최고빈도 주제였다 — 즉 표본을 9회차에서 33회차로 4배 가까이 늘려도 순위가 흔들리지 않은, 매우 안정적인 1위다. 세 차례 침입(1차 서희, 2차 양규, 3차 강감찬)이 각각 독립된 출제 포인트가 될 수 있어 한 회차 안에서도 여러 문항으로 갈라져 나올 여지가 있다는 점도 체감 빈도를 높이는 요인이다. "이 시험에서 딱 한 주제만 완벽히 암기해야 한다면 거란의 침입"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수준이다.
핵심정리
① 3차에 걸친 침입 — 시기·인물·결과를 반드시 구분
| 침입 차수 | 시기 | 거란 측 지휘관 | 고려의 대응 | 결과 |
|---|---|---|---|---|
| 1차 | 993년(성종 12) | 소손녕 | 무력 충돌 없이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대응 — 소손녕의 "고려는 신라를 계승했으니 고구려 땅은 거란 것"이라는 주장에, 서희는 "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국경이 막힌 것은 여진 때문"이라고 반박 | 거란과의 교류를 약속하는 대가로 강동 6주 확보 |
| 2차 | 1010년(현종 1) | 거란 성종이 직접 이끈 대군 | 강조의 정변을 구실 삼아 침입. 양규가 흥화진을 지키고 곽주를 기습하는 등 항전,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 | 고려가 강화를 요청해 거란군 철수, 양규는 이듬해(1011) 전사 |
| 3차 | 1018~1019년(현종 9~10) | 소배압 | 강감찬과 강민첨이 흥화진 삼교천에서 소가죽으로 물줄기를 막아두었다가 터뜨려 초반 타격을 준 뒤, 최종적으로 귀주에서 격돌 | 귀주대첩(1019.2)으로 거란군 궤멸적 패배, 이후 고려·거란·송 사이 세력균형 안정 |
② 강동 6주 — 지명까지 정확히
압록강과 청천강 사이, 1차 침입 담판 당시 확보한 "안북부로부터 압록강 동쪽까지 약 280리" 구역에 이후 축성한 6개 성을 가리킨다.
| 성 이름 | 현재 위치(대략) |
|---|---|
| 흥화진 | 백마산성 일대 |
| 용주 | 용천 |
| 철주 | 철산 |
| 통주 | 선천 |
| 곽주 | 곽산 |
| 귀주 | 구성 — 3차 침입 최종 결전지와 동일 지명 |
③ 침입 이후 후속 조치
| 조치 | 내용 |
|---|---|
| 나성 축조 | 개경 둘레에 축성, 강감찬의 건의로 추진 |
| 천리장성 | 압록강 어귀~동해안 도련포까지 국경 방비선 구축 |
| 초조대장경 조판 | 2차 침입 직후(1011년경) 시작 — 거란 격퇴를 염원하며 조성. 훗날 몽골 침입 때 만든 재조대장경(팔만대장경)과는 별개임에 주의 |
뜨끔포인트
1. "서희는 무력으로 거란군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빼앗았다" (X) — 무력 충돌이 아니라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확보했다. 담판 논리(고려=고구려 계승, 국경 단절 원인=여진)를 함께 기억해야 "왜 거란이 순순히 물러났는가"까지 설명할 수 있다. 2. "거란의 침입은 강감찬의 귀주대첩 한 번뿐이었다" (X) — 993년 서희의 담판(1차), 1010년 양규의 항전(2차), 1019년 귀주대첩(3차)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있었다. 귀주대첩은 그중
3차 침입의 결말 이지 침입 자체의 전부가 아니다.
3. "거란 침입을 계기로 만든 대장경이 팔만대장경이다" (X) — 거란 침입(2차 직후, 1011년경) 격퇴를 염원해 만든 것은 초조대장경이다. 팔만대장경(재조대장경)은 훗날 몽골 침입 때(1236~1251) 다시 만든 것으로, 시기와 대상 모두 다르다.
암기코드
- "서희는 세 치 혀로 땅을 사고, 양규는 몸으로 막다 죽고, 강감찬은 강물로 쓸어버렸다" — 1차(외교)·2차(항전)·3차(수공) 침입의 성격을 대응 방식으로 압축.
- "흥한 용이 철통같이 통하고, 곽에서 귀했다" — 강동 6주 여섯 성(흥화진·용주·철주·통주· 곽주·귀주)의 앞글자를 문장에 그대로 녹여 순서·개수를 함께 암기.
- "거란엔 초조, 몽골엔 재조(팔만)" — 두 대장경이 서로 다른 침입에 대응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대구로 고정.
확인문제
OX
1. 서희는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 6주를 확보했다. ( ) 2. 귀주대첩은 거란의 3차 침입 중 가장 먼저 벌어진 전투였다. ( )
정답 및 해설
1. (O) — 1차 침입(993) 당시 무력 충돌 없이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으로 확보했다. 2. (X) — 3차 침입에서 가장 먼저 벌어진 전투는 강감찬·강민첨이 소가죽으로 물줄기를 막아 타격을 준 흥화진 삼교천 전투였고, 귀주대첩은 그 뒤에 벌어진 최종 결전이다.
객관식 (5지선다)
문제 1. 다음 중 거란(요)의 고려 침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?
① 1차 침입 때 서희는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. ② 2차 침입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 성종이 직접 이끌었다. ③ 2차 침입 때 양규는 흥화진을 지키고 곽주를 기습하는 등 활약하다가 이듬해 전사하였다. ④ 3차 침입 때 강감찬은 첫 전투부터 개경에서 소배압의 군대를 맞아 승리하였다. ⑤ 3차 침입 이후 고려는 개경에 나성을, 국경에 천리장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다.
정답 ④ — 3차 침입의 첫 전투는 개경이 아니라 흥화진 삼교천에서 벌어졌고(소가죽으로 물줄기를 막았다가 터뜨림), 최종 결전인 귀주대첩도 개경이 아닌 귀주에서 벌어졌다. 나머지 선지는 모두 옳은 서술이다.
문제 2. 다음 중 강동 6주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?
① 흥화진 ② 용주 ③ 철주 ④ 통주 ⑤ 안주
정답 ⑤ — 강동 6주는 흥화진·용주·철주·통주·곽주·귀주 여섯 곳이며, 안주는 포함되지 않는다. 지명이 비슷해 보이는 함정 선지이므로 여섯 곳을 정확히 암기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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🏆 빈출 랭킹 (33회차 전수 분석 — 순위표·최상위~중위 주제)
시대순 10단원 (선사~현대 + 통합주제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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